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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가 빛나는 밤에 [이빛밤13화]텍사스에서 생긴 일

텍산2b632
2019-11-14 01:21:44 272 1 0

미국 텍사스에 있을때의 일이다.


때는 기온이 섭씨 40도를 돌파하는 뜨거운 여름이었다.

여름방학, 집안에서 에어컨 바람이나 쐬며 TV를 보고 있기에는 너무 아까운 시간이었다.

집안에 널부러져 있는것에 권태로움을 느낀 나와 룸메이트는 바로 떠날 준비를 했다.

마침 룸메이트가 2000불짜리 중고차를 산지 얼마 안된 시점이었기에 멀리 떠나보고 싶었다.

텍사스주는 딱히 유명한 관광지는 없었지만, 그나마 볼만한건 넓게 펼쳐진 들판과 몇개 없는 호수들이었다.


해가 그 아래 있는 모든것을 태워버릴듯 열기를 쏟아내는 날씨에, 나무도 몇그루 없는 들판에서 말라 죽을 수는 없어, 호수를 가기로 했다.


키보드를 두드리며 찾다보니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호수가 나왔다. 포섬킹덤 레이크(Possum Kingdom Lake).

호수 가운데 헬스 게이트(Hells Gate) 라고 불리는 커다란 성벽같은 두게의 절벽이 우리를 부르고 있는듯 했다!


당시 한창 양꼬치에 빠져있던 우리는 호수에 가면 먹을 바베큐거리로 양고기와 꼬치막대, 숯, 음료등을 사서 차에 싣고 출발했다.

차로 3시간 정도의 걸리는 거리다.


처음은 너무 좋았다.


여전히 차 안에 갖혀 연신 에어컨 바람을 쐬고 있지만, 익숙한 집과 동네에서 벗어나, 작은 언덕 조차 볼 수 없는 텍사스의 평원 사이로 난, 그 끝이 보이지 않을정도로 쭉 뻣은 도로를 달리는것 만으로도 가슴이 뻥 뚤리는 느낌이었다.

창밖으로 보이는 모든 광경은 눈이 가는 곳마다 어느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뜨거운 햇살에 연한 갈색으로 매마른 풀들과 그것들을 뜯어먹는 흑우들이 창밖을 스쳐가고. 심심치 않게 길가에 보이는 군락을 이룬 색바랜 녹색의 선인장과 그 위에 핀 선명한 노랑과 붉은색의 선인장 꽃들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가장 좋았던 것은 그 넓은 평원에, 우리 말고는 지나가는 사람도, 달리는 차도 하나없었다. 마치 우리가 지구를 전세낸것만 같았다. 달리다 갑자기 멈춰서 사진을 찍어도, 지평선 끝을 향해 목젓이 날아갈듯 힘껏 소리를 질러도, 도로에 누워 에어컨의 냉기를 뜨겁게 달궈진 아스팔트의 온기로 채우고 있어도 뭐라고 할 사람도 피해야 할 차도 없다. 마치 영화속 황야의 무법자가 된 기분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였다. 여기는 텍사스, 진짜 평원 밖에 없다.

달리고 달려도 계~~~속 똑같은 풍경이 창밖을 스쳐갔다.

그나마 가끔 사슴이나 스컹크같은 이상한 동물이 지나가면 잠깐 차를 멈추고 길을 내어줄 뿐이다.


마침내 호수에 근처에 도착했지만...

호수쪽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아마도 이 호수는 부유층들이 별장을 짓고 보트를 타거나 하는 곳 인것 같다. 

사유지를 통하지 않고 호수로 들어가는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여기까지 왔는데 그냥 갈 수는 없어서, 에라 모르겟다는 심정으로 CCTV가 감시하고 있는 사유지입구를 통해 호수쪽으로 들어갔다.


이날은 왜 이렇게 더웠던 건지,,, 바람 한점 불지 않아서 땀을 뻘뻘 흘리면 숯에 불을 붙이고 준비해온 양꼬치를, 더위에 그 맛을 빼앗긴채, 먹고는 인터넷에서 사진으로 보았던 헬스게이트 절벽을 찾아 나섰다.

이 마저도 절벽이 재대로 보이는 장소를 찾을 수 없어서, 아직 공사중인 이름모를 부자의 별장 뒷마당으로 잠입해 헬스게이트를 배경으로 몰래 셀카를 찍고 나왔다.


호수에 와서 양꼬치도 먹엇고, 헬스게이트도 봤고, 더운 날씨에 더이상 다른걸 할 의욕이 사라져 우리는 돌아가기로 한다.


다시 아까 전에 3시간 동안 보았던 똑같은 풍경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

.

.


스르르륵...

잘 가던 차가 갑지가 멈춰섰다...!


왜지??


그렇다, 차에 기름이 없었다! 그리고 여기는 아무도, 아무것도 없는 허허벌판이다...

있는거라곤 옆에서 울어대는 흑우 뿐이다.


흑우가 있다고? 

흑우가 여기 있다면, 가까이에 흑우 주인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주변을 둘러보니 저~~멀리 오랫동안 멈춘채 움직이지 않은 듯 보이는 카라반 한대가 보였다.

우리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은 저 카라반에 살고 있을 사람뿐일 것이다.


뙤약볕에 택사스의 허허벌판을 걸어가며 홀로 서있는 카라반을 바라보고 있자니 텍사스를 배경으로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라는 범죄 스릴러 소설이 머리속을 스쳐간다. 

'설마 별일이야 있겠어...?'라고 생각하며, 유일한 희망인 카라반에 다가가자 안쪽에서 개가 짓어대는 소리가 경계심 가득히 들려온다.

똑,똑,똑...

잠시후 깡마른 체구에 햇빛에 그을려 얼굴 빛이 어두운 중년의 백인 여자 하나가 갑작스런 동양들의 방문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나왔다.

하지만 오랜만에 방문한 손님이 반가운건지, 방문 목적은 묻지도않고 어서 안으로 들어오라며 문을 열어주었다.

좁은 카라반의 거실에는 브라운관TV와 일시정지 되어있는 VCR플레이어, 어느세 우리가 앉아있는 2인용 쇼파가 있었다. 그리고 내 다리 바로 옆에는 그레이트 데인으로 보이는 회색 대형견이 앉아서 더위에 헐떡거리며 경계심 가득한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카라반 안에 가득한 담배연기에, 창문형 에어컨이 골골거리며 간신히 내뿜은 차가운 호흡이 내 목덜미를 스치고 있을때즘 주방으로 보이는 곳에서 한 거구의 남자가 어슬렁 거리며 나왔다. 


우리는 거실 중앙의 소파에 앉은채 대형견과 거구의 남자에게 포위되어있었다...


다행히도 범죄 스릴러 소설같은 전개는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축 늘어진 볼살 사이로 침을 흘리는 개의 얼굴을 옆으로 밀어내며 남자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도움을 요청했고, 잠시후 우리를 맞아주었던 여자가 자신의 빨간 픽업트럽에 우리를 태우고 가장 가까운 주유소로 대려다 기름을 살 수 있게 도와주었다. 

차로 돌아온 우리는 고마움의 답례로 말보로 레드 두갑을 여자에게 건내며 작별 인사를 했고, 여자는 좋지도 싫지도 않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담배를 받아들고 우리 곁을 떠났다. 


오늘 있었던 동양인들의 깜짝 방문에 여자는 집으로 돌아가 남자와 자욱한 담배 연기 사이로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황야를 배경으로 이런 저런 상상으로 하며, 우리는 권태로움이 어느새 편안함으로 바뀌어있는 집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그렇다할 신나는 기억도, 엄청 맛있는 음식도, 가슴 벅찬 풍경도 없었던 우발적으로 저질러진 여행이었지만, 평소라면 할 생각 조차 하지 않았을 행동들과 낯선 사람들과의 긴장되는(어쩌면 두려웠던) 만남이 가져다준 두근거림이 내 무료했던 날들에 기분 좋은 자극과 활기를 가져다 주기에 충분했던 여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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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지님, 사연은 썻지만 아쉽게도 저는 이번 이빛밤 생방에는 참여할 수가 없을거 같네요. 

이번 이빛밤도 즐거운 시간되세요! 

히더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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