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딱히 별 말은 아니고.
아, 오늘 사과나무에 열려 있던 사과를 거의 다 땄어. 아마 내일에는 다 따게 될 텐데, 날씨가 염병이네. 사과 질 떨어지면 또 적자나는데.
오늘 약은 챙겨먹었지? 어디 보자 약 봉지가 하나, 둘... 안 먹었네 이 새끼가. 먹으라고 했는데.. 물 떠올 테니까 기다려 봐.
내가 병원까지 드라이브해다가 도로 과수원에 오기까지 지나쳐왔던 건물의 높이만 합쳐도 화성에 갔다를 왔을 거다 화성에.
별 말은 아니라면서 참 길게도 말 한다. 그래, 약 봉지 하나 뜯었어.
그럼 뭐해, 내가 진짜로 화성을 갔다올 수 있어도, 내 정신은 항상 빛의 덩어리가 되어서 구멍 속으로 사라지는데. 요즘은 또, 벌거숭이 나무에서 어떤 결정이 자라나는 꿈을 꾸다가 깬단 말이야
그런데 그 결정에서 뭐가 보이는지 알아? 그 벌거숭이 나무란 말이야. 그 안에서도 난 결정을 따서 안을 들여다 보고 있어. 결국 나는 가장 작은 무언가에 불과하다는 뜻밖에 안 돼.
투명한 뭔가를 보면서 그 결정이 연상되면 난 약 먹는 걸 관둘 거다. 내 의식이 어차피 현실에 들어서는 걸 못 막고 있는 게 현실이잖아. 5년을 버티라고? 지랄을 하네 5년은 무슨 5년. 오지랖도 넓어요 시간 개념에. 약 봉지에서 내가 보이면 이젠 답 없어. 아직은 약 봉지를 뚫어져라 쳐다봐도 안심약국 표시만 있지만 말이야.
그 두 말 사이에는 나의 의식과 환자인 너의 의식이 누워 있는 거다. 너가 본 벌거숭이 나무의 열매인 결정에서는 사과 맛에 구더기 맛이 좀 섞여 있다. 부서진 결정 속에서도 너는 작아져서 존재하기를 고집하고 있어 다행이다. 나는 결정을 모두 먹어치우면서 너가 잠들 때마다 거울 속의 나를 보면 왜인지 너의 모습은 네 말대로 결정을 들고 있는 채로 반복된다. 언젠간 너의 모습이 온전하기를 바랄게, 하지만 오늘 또다시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 같아. 내 말들은 다시 원래의 출처였던 화성으로 돌아가는 거밖엔 안 되겠지.
난 오늘은 이 땅 밑에서만 퍼오기로 결심을 해보아도 내일이면 이 땅 밑에서 자라나는 나의 슬픔 때문에 꼭 다른 곳의 말을 더 끌어오고 그럴 때마다 넌 그 벌거숭이 나무 속으로 기어들어가버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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