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곡 평론/후기 이강백-[죽기살기], 세상을 오해하며 살기(1)

Global Moderator 유리는매일내일
2019-10-09 15:54:29 40 0 0

세상을 이해하고 살기엔 너무나 불가해한 세상이 되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오늘도 우리는 출근길에 마음에 들지 않는 부장의 얼굴, 술 때려박을 술집 사장의 얼굴, 옆자리 직장 상사, 후배의 얼굴을 읽어내려고 한편으로는 조종하려고 시도하곤 합니다. 이해하는 것에는 두 가지 방향이 있습니다. 정확히 이해하거나,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채 주관이 섞이거나. 결국 '보편적인 지식'(익은 사과는 빨간색이다 같은)을 제외하면 우리는 지식을 이해하기 위해 오해를 수단으로 활용합니다.

도덕에 관련된 여러가지 인간의 판단력과 기준을 시험하는 질문들(하인즈의 딜레마 등)에도 우리는 결국 '오해'를 사용해야 합니다. 오해 없이 완전히 객관적으로 바라본다고 "그것이 높은 도덕성이다"는 절대 아니기 째문입니다. 신이라면(그리고 존재한다면) 적절한 요소들을 변형해 모두가 만족할 해법을 제시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과 "모두모두 행복하게 살았답니다"는 서로 다른 게 없는 흐릿한 결말입니다. 명확한 판단의 위계가 있어야 우리는 납득을 하고 이 판단의 위계는 결국 주관이 개입됩니다. 이것이 '오해', 즉 어쩌면 오해는 주관이라는 단어의 또다른 표현일 수 있을 것입니다.

[죽기살기]에서 묘사되는 오해는 삶의 방식입니다. 불가해한 삶을 사는, 충동적인 삶을 사는 인간이 살기 위해 판단하는 방법. 과연 오해가 어떻게 우리 삶을 평안하게 만들까요?

1막이 열리면 맹인 3인방 오두, 정두, 박두가 목마를 신나게 타고 놉니다. 신나게 달리다가, 정두가 문득 누군가가 그들을 지켜본다고 의심을 하면서 이야기가 시작되죠.

정두는 분명 앞을 못 보지만,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는 말을 합니다. 하지만 박두는, 결국 누군가가 우리를 본다한들 그 누군가를 우리가 볼 방법은 없으니, 서로 보지 않는 것과 같다며 반박하고, 이에 대해 오두가 '둘 다 맞다'라고 하는 것에 목마놀이는 깨지게 됩니다.


박두, 정두, 목마를 멈춘다.

정두:난 기분 나빠 못 타겠어!

박두:나도 그만 타겠네!

오두:왜들 이러는가?

정두:둘 다 맞다니...... 태도를 분명히 하게!

오두:어제 아침엔 둘 다 틀렸다고 했더니 화를 내더군. 그래서 오늘은 둘 다 맞다고 한 걸세. 야호! 야호! 달려라, 달려!

박두, 정두:자네 혼자 열심히 타게!


이후 만복이에게 목마를 돌려준 후 박두와 정두는 이것도 저것도 맞다는 인간이 싫다는 이야기를 하고 오두는 아침에 이야기한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고 합니다. 화분 받침대 위로 가서 논의해보자고 하는데, 매번 갈 때마다 꼭 누군가가 화분을 올려둔 게 정두와 박두는 불만입니다.

화분을 내려놓고 화분 받침대 위에 앉아 논의를 하면서 오두는 박두와 정두의 관점을 각각 '상대적 관점'과 '주관적 관점'이라고 규정합니다. 박두는 우리가 그 누군가를 볼 수 없으니 서로 못 보는 것이라 했으니, 결국 자신의 경우를 다른 사람에게 대입해 볼 수 있다는 상대성을 주장하고, 정두는 우리가 그들을 못 보더라도 그들이 우리를 볼 수 있다는 건 확인할 수는 없는 주관적인 추측이조.

이 때 오두는 자신은 그 둘 중 어느 것도 아니며 그 둘을 초월해 쏠림이 없는 '초월적 관점'이라는 말을 합니다.


잠시 "둘 중 어느 것도 아니야"라는 말을 생각해봅시다. 용어가 치렁거리는 저 '~적'을 떼어버리면, 지금 박두와 정두의 의견의 차이는 누군가가 우리를 볼 수 있다, 없다라는 이분법입니다. 즉, 그렇다, 아니다의 긍정과 부정의 이분법에 대해 씨름하고 있고 오두는 이 둘을 모두 부정합니다. 이 부정은 얼핏 보면 극단적인 의견을 피하는 철학가이지만, 이 질문은 우리를 보는 누군가가 있거나, 없거나의 하나이니 둘 다 아니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는 가정이고 이는 오두와 같은 관점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어중간한' 것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들 하는 게 여기에 있죠.

정두는 오두의 분류법은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하며 근본적인 해법, '보이는 눈'을 찾으려고 합니다. 이때 '이층남자'가 언제나 있는 일이라는 듯 창문을 열고 맹인들의 논의에 개입하게 됩니다. 이층남자는 눈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층남자는 과연 맹인들을 쳐다보는 시선이 있었나를 망원경으로 확인해봅니다. 그런데 이 보이는 눈이 해결법은 아닙니다. 이미 지나간 일을 확인하려면 보이는 눈이 필요한 게 아니라 그 거리를 그 시간대에 지나간 사람이 있는가를 한 명 한 명마다 물어가는 게 낫지, 지금 길거리에 누군가가 있는가 없는가는 절대로 그때 그 누군가가 있는가를 결정짓지 않습니다. 이와중에 오두는 자신의 '초월적 관점'의 우월성을 주장하며 박두와 정두에게 또 면박을 당하죠.

그런데 망원경에 비치는 남자가 가는 곳은 도살장입니다. 젊을 때 힘깨나 쓴 것 같은 다부진 어깨와 꼿꼿한 허리를 가졌죠. 다만 세월을 이기지 못한 머리만큼은 희끗합니다. 지독한 악취가 바람부는 날엔 길거리를 모두 덮을 정도로 심한 그 도살장에 들어가는 남자는 과연 무엇을 하려는 걸까요?

이것을 더 관측해보려고 했지만 이층남자가 보는 것의 두 번째 한계가 드러나는데, 아무리 그를 망원경으로 관찰해도 그의 이름, 그의 행위의 목적 등을 알아낼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저멀리까지 보이고 그 정도 가시거리에 표정 같은 세세한 것까지 볼 수 있는 성능을 지닌 망원경으로도 사람 한 길 속은 알 수가 없는 것이죠.

그와중에 부녀회장, 부녀회원들이 몰려오며 화분을 내려놓았던 맹인들은 그들의 잔소리가 질색인지라 황급히 자리를 떠납니다. 부녀회원들은 화분을 내려놓은 누군가를 증오하며 다시 화분 받침대 위로 화분을 올리며 다가올 '아름다운 길 선발대회'를 이겨야 한다고 아우성들입니다. 그 대회를 이기려고 성금까지 내가며 만들었는데 울상이 질 만도 하죠.

이때 이층여자가 고개를 내밀며 부녀회의 노력의 이유를 설명해주는데, 도살장 길이 1등을 받아야 내려가는 땅값이 다시 오를 거라는 기대 때문이죠. 이들의 바람에 도움을 주겠다며 조언을 해줍니다. 화분 받침대 옆으로 소파를 설치하라는 것이죠. 어르신들이 계속 화분을 내려놓고 앉으니, 차라리 앉을 곳을 하나 마련해두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하고 부녀회는 최고급 소파를 들여놓겠다고 결심합니다.

하지만 이층남자는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죠. 결국 그 길은 '도살장'이 들어서 있다는 것. 솔직히 누가 길에 있는 도살장을 예쁘다 하겠습니까? 비 오면 빨간 물이 떨어지는 게 핏물 같기까지 한데 말이죠. 하지만 부녀회는 불가능은 없다며 계획을 추진합니다.

이층여자는 이후 부녀회가 그렇게 속여먹기 쉬운 곳이라는 것을 조롱하며 그녀들이 가구점에 간 모습을 보려고 하는데 남자는 이전에 보았던 문제의 노인을 보라고 합니다.

이층남자, 이층여자에게 망원경을 준다.

이층남자:가구점 말고 저쪽을 봐.

이층여자:저쪽 어디요?

이층남자:도살장! 어떤 남자가 앉아있는 게 보이지?

이층여자:네, 보여요.

이층남자:잘 봐, 아는 사람이야?

이층여자:아뇨.......

이층남자:방금 부녀회장 왔을 때 물어볼 걸.

이층여자:부녀회장도 모르죠.

이층남자:그래?

이층여자:저 남자는 부녀회원이 아니잖아요?


이층여자의 "저 남자는 부녀회원이 이니잖아요?"라는 말이 이 희곡을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이 희곡의 계층들은 1장에서 서로 완전히 분리되어 소개되어 있습니다. 맹인, 부녀회, 이층의 남녀, 도살장 노인. 이층남녀의 '이층', 부녀회장, 부녀회원들의 '부녀회' 맹인들, 그리고 하나의 노인이라는 각각을 완전히 분리시키는 요소들이 자리잡고 있는 셈이죠. 분리된 계층은 결국 이해할 수 없는 요소가 많습니다.


이층여자는 결국 보려된 우스운 부녀회의 쇼핑은 못 보고 그 노파의 쓸쓸한 표정만 보다가 이층남자와 창문을 닫으며 1장 끝.


2장이 오르면 어느 '아우'와 '형'이 나옵니다. 이들은 소파를 옮기는데, 도살장 길을 증오합니다. 의붓아버지에게 얻어맞던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며.

부녀회장 말대로 화분받침대 옆에 소파를 놓은 후 이층여자가 '속이기 쉽다'고 한 부녀회의 충동적 수긍의 문제점이 이야기됩니다. 소파를 길거리에 내놨다가 비 오면 젖게 됩니다. 특히, 최고급 소파는 가죽으로 만들었으니 그 가치가 깎이기는 특히나 더 쉽죠.

이후 아우와 형이 그 불쌍한 소파를 배웅하는데 아우는 좀 슬퍼하며 보내지만 형은 단호히 보냅니다. 형은 냉정해야 세상을 살 수 잌ㅆ다고 하며 아우는 너무 냉정하다고 하며 2장이 끝납니다.

3장이 오르면 만복이 목마들을 끌고 오는 중 '육손'이 부르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육손이 마구간으로 가, 만복에게 도살장이 자신이 없던 사이 어찌 그렇게까지 폐허가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만복이 말하기를, 도살장에서 살인 사건이 하나 있었다고 합니다. 아까도 말했듯 집값은 계속 뚝뚝 떨어지게 된 것이 아마 이 살인사건이 일러난 도살장의 흉측한 모습이 건재한 탓인지도 모릅니다.

만복은 이 땅값 싼 마을에서 마구간을 구해 살 수 있다며 좋다고 말합니다. 육손은 그런 만복에게 충격적인 사실을 말하는데,

육손:내가 살인자요.

만복:네......?

육손:내가 도살장에서 사람을 죽였소.

그러니까 육손이 그 사건을 일으킨 범인이군요. 하지만 이야기는 더 있습니다.

만복:저...... 정말입니까?

육손:난 살인죄로 십칠 년 동안 감옥살이를 하였소. 그리고 나오자 마자 이곳으로 온 거요. 온종일 도살장 앞에 앉아서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기를 기다렸소. 하지만 아무도 없더군. 옛 도살장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은 모두 떠나버렸는지......

만복:있습니다, 아직도......

육손:이, 있다니 다행이요!

만복:매일 아침 제 목마를 타는 어르신들이 있는데요, 그분들이 도살장에서 일하셨서요.

아하, 그러니까 오두, 정두, 박두는 이 살인범 육손 씨와 도살장에서 일하던 동료군요. 하지만 여전히 1장에서 이야기된 문제인 지켜보는 누군가에 대한 대답은 못 됩니다. 육손이 그들을 지켜보았는가 그냥 안 지켜보았는가를 알 수는 없으니까요.

육손은 자신의 죄를 사죄하러 왔다고 하니 만복은 당황스러울 겁니다. 살인범이 자신 앞에서 누구낙에게 사죄하고 싶다고 하는 게, 경찰이 아닌 이상엔 겁부터 나지 않겠습니까? 또다른 범행을 일으키려는 전초전일지도 모르는데 말입니다.

만복은 우선 육손을 안으로 들여 식사부터 하자고 합니다. 육손은 머뭇거리지만 만복의 계속된 요청에 드디어 마구간으로 들어가며 3장 끝.

4장이 시작되면 오늘 아침은 오두가 말 타기가 꺼려져 원래 논의를 하던 화분 받침대로 가자고 합니다. 정두와 박두는 또 누군가가 있다, 없다고 말싸움을 하죠.

화분 받침대로 가니 푹신한 물건 하나가 그 옆에 있습니다. 박두가 부드럽다고 하자 정두는 부드러운 식탁이라고 하고, 박두는 부드러운 침대는 있어도 부드러운 식탁은 없다고 지적하자 오두는 그 물체가 침대도 식탁도 아닌 소파임을 정확히 알아차리며 맹인들은 앉게 됩니다.

박두와 정두는 자신의 경험에 따라 침대와 식탁이라고 추측했고, 오두는 손자들이 말 대신 타고 논다고 합니다. 이 말에 맹인들은 재밌게 소파를 타고 놀지만 박두는 재미가 없다는 이유로, 정두는 다른 사람들이 흉을 볼 거란 이유로 멈추고 그렇게 원래 자리인 화분 받침대로 가는데 언제나처럼 화분이 놓여 있습니다. 아무래도 소파를 화분 받침대 대신 화분을 올려놓는 장소로 쓰는 게 현명해보입니다. 꽃들은 소파를 좋아할 겁니다, 부드럽잖습니까?

그런데 박두가 이 말에 화분 받침대 위에 오른 자신들의 의의를 묻습니다. 정두와 자신들이 꽃이라는 감상적인 의견을 제시하고 오두는 맞장구를 쳐주는 듯한 말을 하지만 박두는 이것을 거절합니다.

이 부분을 생각해보기 위해 오두의 지적을 다시 가져와봅시다. 박두는 '상대적 관점'을 가졌습니다. 누군가가 그렇다면, 우리도 그렇다는 것. 그렇다고 여기서 박두가 거절한 이유가 이렇게 되면 모두가 꽃이 되어버린다는 공포심은 아닐 테고, 박두의 상대적 관점은 왜 정두의 꽃의 비유를 탈출하려고 하는 걸까요?

이층남자가 문을 열면서 박두의 의견이 드러납니다. 오두는 모 시인의 "꽃이 아름다운 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말을 인용해 침묵으로 꽃이 되려 하는 중인데 이층남자가 문을 열어 기분이 나쁩니다. 이 의견에는 정두도 어느 정도 동감하는 모양새입니다.

이층남자, 창문을 열고 고개를 내민다.

이층남자:오늘은 무슨 문제입니까?

오두:창문을 닫으시오!

이층남자:......네?

오두:우리가 침묵하는데 창문을 열다니...... 어서 닫으시오!

이층남자:난 언제든지 문을 열 권리가 있는데요?

정두:오늘 우리는 꽃이 되었소.

박두:나는 절대로 꽃이 아니야!

정두:입 다물고 가만 있게. 그럼 꽃이 되는 거야.

박두:싫어, 싫다니까! (이층남자를 향해) 당신 눈엔 어떻소? 우리가 장미꽃이나 해바라기로 보이시오?


박두의 상대적 의견의 주체는 자신이 아닌 타인으로 보입니다. 타인의 시선을 나도 가진다는 수동적인 의견인 셈입니다.


이층남자는 당황하며 물론 어엿한 사람의 육체를 지닌 그들이 꽃일리는 없다고 대답하자 오두는 도살장의 노인의 건을 이야기하며 자신들의 보이지 않는 눈으로는 볼 수가 없었다고 항변하며 더 이상 이층남자의 말을 듣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이층여자가 나오며 이 말을 거듭니다. 어둠 속에서는 눈보다 귀가 쓸모 있다고 말입니다.

아무래도 이층여자는 마구간의 이야기를 엿들었나 봅니다. 오두, 정두, 박두는 모두 그 도살장 노인이 육손임을 알아차리게 되죠.

이층여자는 육손이 사죄하려고 왔다는 내용까지 말하지만 이번엔 이층남자가 그 말이 지어낸 것이라 의심합니다. 이층여자는 자신의 무기인 보청기의 성능을 이야기하며 길바닥에 기어다니는 개미떼를 보라고 이야기하지만 이층남자의 망원경에 보이는 개미떼는 없습니다.

이때 오두, 정두, 박두는 발자국 소리를 듣고 '아우'와 '형'이 걸어옵니다.

아우는 그 소파가 쓰이고 있음에 감사하고(노인들이 아니라 화분이 앉아있다는 좀 괴상한 용도입니다만) 형은 여전히 반응이 미지근합니다.

오두는 그들의 목소리가 익숙하다고 하며 그들을 찾아온 육손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육손이 살해했던 것이 바로 아우와 형의 아버지였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에 아우와 형이 드디어 왔다고 하는 사이에 부녀회가 옵니다. 안타깝게도 오늘은 맹인들이 여러 이야기가 겹치며 도망갈 타이밍을 놓쳤습니다. 부녀회의 포위망에 갇히게 된 맹인들은 부녀회의 설교를 듣습니다. 아름다운 길 선발대회, 화분 등등.

부녀회의 통탄 틈으로 이번엔 만복이 오고 이제 심각한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육손의 이야기이죠. 만복은 육손의 이야기가 시종일관 심각하며 육손에게 안정이 필요함을 일러줍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원수를 만나는 데에 한시바쁜 아우와 형은 그의 요청을 들어줄 생각이 없습니다. 결국 만복의 요청은 실패한 채 그 살인범을 데려오는 여정을 떠나게 되죠.

이제 우리의 살인범, 육손이 등장하며 1막은 절정에 이릅니다. 물론 육손이 살인범이긴 하지만 그래도 한때 동료였으니 맹인들은 그를 맞아줍니다. 다만 욱손이 살인을 한 바람에 도살장에서 잡은 고기가 사람고기라는 소문이 나버려 도살장이 망해버렸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죠.

그래도 다들 도살장 일을 했으니 여전히 고기는 먹는데, 육손은 채식을 한다고 합니다. 이 아이러니를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부녀회의 문제인 땅값 폭락의 근원이기도 하니 원성은 자자합니다. 이에 육손은 미안하다고 하며 자신의 죽음으로 이를 갚겠다고 도살장에서 쓰던 칼을 꺼내며 난동을 부리자 부녀회는 말리진 않고 보지 말자고 눈만 가리고, 정작 사건의 당사자인 형과 아우는 그의 난동에 오히려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입니다. 그가 죽인 의붓아버지는 그들을 폭행하고 밥을 굶기는 등의 폭력을 자행했고 매일 의붓아버지가 죽기를 기도했다며, 그리고 의붓아버지를 죽인 은인을 다시 만나길 원했다며.

그러자 육손은 자신이 만나려 했던 유가족이 아니라고 하며 유가족을 만나 그들의 손에 죽겠다며 다시 도살장으로 가고, 부녀회장들이 그 모습을 못 본 것이며 못 본 걸로 해야 땅값이 안 떨어진다고 단단히 일러두며 1막이 내리는데, 부녀회에서 아무 것도 보지 못 했다라고 하는 것이 그 극단적 상황에서도 이어지는 태도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이 죽는데도, 그걸 말리려고 나서기보다는 자신들의 이익에 대해 모든 사고를 모아놓았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일에는 관심이 없는 셈이죠. 우리가 부녀회에 대해 드라마에서 본 이미지들에서 부녀회는 매번 모든 일을 밀어붙이지 않습니까? 이 밀어붙임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한다는 이미지로 그려질 때, 이 이익이 제로썸 게임이라는 것은 타인의 이익을 공평하기 고려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과연 이 서로 이해할 수 없는 계층들의 군상은 어떻게 결말을 맺을까요? 특히, 살인범이라는 가장 커다란 문제를 앉고 있는 육손은 과연 자신의 목적을 이루게 될까요?

(2)에서 이어서.


아무래도 처음에 황색여관에 대해 썼을 때 마지막을 흐지부지하게 쓴 느낌이라 차라리 장을 나누어서 확실히 써보려고 합니다.

[챙!]도 오늘 안에 쓸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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