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하르트 일무쿠엘 융뮈크 "밴달리스트" 폰 키멜괴이쩨(Bithart Ilmukuel Jung-Mück "Der Bandalist" von Kimmel-Göeze, 1293~?)는 13세기 말 독일 북부의 항구 도시 킬 북쪽 작은 섬마을의 하급 귀족 출신이었다. 족보를 거슬러 올라가면 그의 조상은 악명 높은 골족 전사와 로마 시민의 피가 흐르는 뼈대 있는 집안이었다.
친척들의 권유로 로마로 유학간 비트하르트는 거기서 동로마제국 의사 출신인 얍콥 포타토노스(Yapkop Potatonos)의 영향을 받아 의사의 길을 걷게 된다.
14세기 흑사병이 전유럽을 휩쓸자 어쩔 수 없이 고향길에 오른 그는 바이에른공국 슈넬도르프(Schnelldorf)에서 첫 의사영업을 시작한다. 작은 마을에서 그는 가끔의 어설픔과 특유의 관음증으로 인해 마을사람들에게 주로 똥이란 멸칭을 들었다. 그러나 이 멸칭을 대놓고 사람들에게 듣지 못했는데(되도록 많이) 듣는 순간 그의 증조부가 십자군 전쟁에서 얻은 성(聖)에란젤의 티타늄 팬으로 사정없이 두들기기 때문이었다.(자세한 사용법은 구약 병기서 7장 2절에서 15절 말씀을 참고할 것.)
맞은 사람들은 자비를 빌며 구걸하였고 그는 자비있게 호우만 거릴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고 한다.
14세기 중엽 잉글랜드왕국 서식스주 옭스딕포드(Orxdikkford)에서 허스 르건즈(Harth "the stonewall" Rhdgurwns)와 스승 얍콥 포타토노스, 포타토노스의 다른 지인들인 치크스 보하이우스(Chicks Bohaeus), 한스 예샤느(Hans Yechanne)와 더불어 카우딕(Kowdig)학파를 만든다.(도시 정화조 개선 연구 학파의 일종)
처음에 그들은 북아프리카 튀니지의 하이즈(Hiz1)에서 학술을 펼쳤지만 바르바리 해적의 준동으로 뿔뿔이 흩어져 가끔 만나서 토론하는 걸로 교류를 이었다.
그를 본 사람들은 비트하르트가 재능 있다고 인정하면서 가끔 그가 사람인지 새인지 헷갈린다고 고백한다. 그의 11인치 짜리 신발은 괴이하여 앞굽과 뒷굽을 분간 못할 지경이었다. 또한 그가 옷을 벗고 물담배를 즐기는 걸 본 사람들이 그의 정체를 폭로 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비웃음만 당했다고 한다.
비트하르트 키멜괴이쩨가 언제 죽었는지 모르지만 다만 전해지는 말로는 뒤를 보지 못해 죽었다고 한다.
저서: "Hou", "HouHou", "Hobbobbo", "Puheuheub", "M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