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의 끝에서부터 불을 붙여 오랫동안 그 불길을 쳐다본다.
불길은 내 어린 시절을 지나친 수많은 깃발들의 움직임을 떠올리게 했다.
잠에 들어갈수록 불꽃의 움직임은 일정한 방향을 갖추기 시작했다.
내가 완전히 잠에 빠지자 불꽃은 나에게서 완전히 떠나버렸다.
한동안 잠에 든 뒤에는 하얀 종이에서 나온 재는 초점을 잃은 눈의 눈동자 같은 조각들을 남겨놓았다.
그것들을 모아 입 안에 털어넣고 물과 함께 집어삼켰다.
물은 재들이 모두 가져가버리고 난 자꾸만 갈증을 느끼게 되었다.
마지막 재의 조각을 겨우 다 삼키면 메스꺼움과 함께 올라오는 구토의 끝에서 종이를 불태운 불꽃이 천천히 나의 입으로 걸어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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