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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7월 20일, 그때 오늘

Global Moderator 옥을태
2019-07-20 21:30:34 1281 25 0

1907년 7월 20일,

"고종 황제, 일본의 강압에 양위하다."


1907년 7월 1일 일본 외무성으로부터 이등박문(이토 히로부미)에게 전문이 하나 전해지게 됩니다.

이 한 장의 전문으로 대한제국 황실과 정부는 초긴장 상태가 되는데, 밀서의 내용은 헤이그 특사들이 만국평화회의에

참석을 요구하며 1905년 11월 17일 맺어진 을사늑약이 황제의 비준이 없으므로 무효임을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헤이그 주재 일본공사가 이 전문을 이등박문에게 다시 전달하게 된 것이다. 이 소식을 접수한 이등박문은 군장교들을 대동하여

고종 황제에게 들이밀며 위협을 하였죠. 그리고 이러한 행위에 대한 책임이 전적으로 고종에게 있으며, 일본에 대한 적대적인

의도로 간주하여 협약 위반을 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선전포고나 다름없다고 했으나..글쎄요..이미 나라꼴이..훠훠훠..


이후 7월 6일 열린 내각 회의에서 친일파 송병준은 황제에게 일본이 불편해하는 관계로 자살하는 것이 도리라는 미친 소리를

하는 것에 멈추지 않고, 다른 대신들로 하여금 자신의 의견을 동조시키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그(새끼)의 말에

동의한다고 입을 열지 못하고 가만히 있던 중 다시 한 마디를 하였습니다.

"만일 자결을 하지 못한다면 천황 폐하께 직접 사죄를 하십시오. 그러지 않으면 항복 후 하세가와 대장에게 빌어야 합니다."

미친 새끼라는 말밖에 안 나오실 거라 생각합니다. 유감스럽게도 실제로 있었던 일이었다는 점만 빼면 그럴듯한 소설이네요.


고종 황제는 받아들일 수 없었으나 3차 어전회의에서 친일파 이병무는 칼로 위협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병무는 합일병합조약의 경술국적입니다. 내달 22일에 자세히 기술하겠습니다.)

이에 고종 황제는 하는 수 없이 물러나게 되며 7월 19일 순종에게 양위를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날 두 황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에 '홍철 없는 홍철팀'과 같은 꼴이 되었습니다.

이날 양위식은 이완용이 대리하였다고 합니다. 생각해보면 자리에 나오지 않았던 것도 상당히 이해가 됩니다. 

자존심이 상하는 문제니까요. 이 사건은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손놓고 바라봐야만 했던 참담한 역사의 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닷새 뒤, 7월 24일 정미 7조약이 체결되어 군대가 해산됩니다.)


그런데, 양위식이 끝나고 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지게 됩니다. 저 역시 "아니 씨발 이게 실제로 있었다고?" 했으니까요.

양위식날 반일 단체였던 동우회에서 이완용의 집을 완전히 불살라버렸습니다. 남김 없이 모두 타버린 이완용은 상당한

재산적 피해를 입게 되었는데 10만원 상당이라고 하니..지금으로 치면 억 단위가 넘겠네요. 아무튼 속은 시원하네요.

이날 이완용은 "조상 신주가 불타버린 것이 일생 중 가장 가슴 아픈 일이었다."고 말할 정도로 그(새끼)에게 매우 큰

정신적인 충격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이 씨발새끼는 나라 팔아먹은 것은 가슴 아픈 일이 아니었나봅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사실 혹 정보와는 다르게 이완용이 매국노의 대명사가 된 계기는 '고종 황제 양위'였다고 합니다.

즉위식이 끝난 후 이등박문은 이완용 데리고 서둘러 자리를 빠져나갔다고 기술되었습니다. 그렇게 통감 관저에서 

보호를 받다가 이등박문이 제공해준 거처에서 머물다가 1908년 1월, 고종이 이완용에게 집을 마련해줬다고 합니다.


자신을 황제의 자리에서 끌어내는 자리의 주역에 있던 죽여도 시원찮을 놈에게 사정이 딱하다며 집을 마련해준 겁니다.

그것도 황실 소유의 저택이라는 것이 놀라움의 연속이 아닐 수가 없던 것이죠. 달리 생각해보면 저와 같은 일반인들의

생각과는 다르게 황실과 이완용의 관계가 꽤 괜찮았다는 것의 반증이 아닌가 싶습니다. 


어쩌면 저의 억측일지 모르지만, 나라를 잃은 아픔과 슬픔 그리고 고통은 돈 없고 힘 없는 민중의 것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 그때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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