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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역사 7월 13일, 그때 오늘

Global Moderator 옥을태
2019-07-14 01:59:09 246 5 0

1953년 7월 13일,

6.25 전쟁 그 과정 중 하나...


1950년 6월 25일부터 1953년 7월 27일까지,

참 오래도 그리고 많이도 싸웠습니다. 그리고 잠시 멈췄습니다.

그전의 일이 그날, 벌어졌던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한국 전쟁 말기, 1953년 7월 휴전이 임박해지고 있을 때, 금성지역 북쪽에 위치한 중공군과 대한민국군과의 전투입니다.

잘 모르실 수 있는 분들도 계실 것 같아서 첨부합니다. 전투를 한 곳은 강원도 화천군 근동면 그리고 화천군 간동면입니다.


이 전투의 배경은 지지부진하던 정전 협상이 1953년 6월에 이르러 유엔군과 조선인민군,

중국인민지원군은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포로문제에 대한 합의를 보았으며, 군사 분계선은 전선의 실제 접촉선에 근거하여

6월 16일 판문점에서 새로 그었습니다. 당시 베이징에서 사무를 주관하던 중국인민지원군 사령관 팽더화이는 휴전협정에

서명하기 위해 평양으로 출발하였으나 6월 18일 대한민국 대통령 이승만의 단독 결정으로 반공포로 석방이 일어나게 되며

이로인해 조인 직전에 있던 휴전회담은 중단되고 한반도는 다시 긴장 상태로 치닫게 된 것이 시작입니다.


6월 20일 평양에 도착한 팽더화이는 이승만의 행동에 대한 대응으로 휴전 협정을 미루기로 하고 대한민국군을 1만 5천 명 정도

더 소멸하기로 판단하였고, 군사 타격을 그 이전까지 양상과는 다르게 대한민국군에만 집중하기로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중공군 4개 군 산하 12개 사단의 병력을 동원하여 대한민국군 5개 사단이 방어하고 있던

금성 지역의 돌출부에 대한 공세를 감행한 것이 금성 전투입니다.


이 과정에서 대한민국군은 1,701 명의 전사자와 7,548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외에 4,136명이 사로잡히거나 실종되었습니다.

이에 중공군은 사망자,부상자 합 6만여명의 인명피해를 입게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이 전투는 중공군의 승리로 돌아간

착잡한 전투로 남아있습니다.우리의 독자적인 힘이 더 강했으면 어땠을지, 다른 선택이 있었으면 어땠을지 아쉬운 대목입니다.


그로부터 약 2주 후, 1953년 7월 27일 대한민국과 북괴는 휴전을 하게 되었지만 이 전투를 비롯하여

이 전과 이 후는 여전히 대한민국에게 있어서 큰 상처로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역사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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