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학부생 시절 교수님께 복수한 썰.txt

수학못하는수학자
2019-07-12 03:31:22 7453 157 12

학부 3학년 시절, 패기롭게 위상수학을 신청하던 그 날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위상수학을 맡으신 교수님은 30대의 나이로 젊으셨고, 그만큼 열정 가득하신 분 이었다.

평소에도 학생들에게 관심이 많으셨으며, 수업 준비 또한 엄청 하셔서 흔히들 말하는 명품 교수님 이셨다.

하지만 그 열정에 걸맞게 과제와 시험의 양 또한 어마무시 했다.

위상수학 수업 역시 마찬가지 였다.


당시 교수님은 그 학기 직후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으셔서 학기말 즈음엔 더욱 바쁘셨다.

바쁘신 와중에도 엄청난 과제와 퀴즈를 들고 오셔서 학생들을 즐겁게 해주셨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1주일만에 퀴즈 두번과 과제 두번이 나온 사건 이었다.

3학점 1주 2회인 수업이었기에 얼마나 참혹했는지는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굳이 언급하자면, 화요일까지 과제가 있었고 화요일에 퀴즈를 보겠다고 하셨다.

약속의 화요일, 퀴즈를 치고 수업이 끝난 후 과제를 걷으신 다음 교수님은 즐거운 표정으로 말씀하셨다.


"목요일까지 과제가 있을 예정입니다. BB 참고 바랍니다. 그리고 목요일날 퀴즈가 있을 예정입니다. 그리고 학기초 공지했던대로 금요일 기말고사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남기신 후 황급히 자리를 뜨셨다.

모두가 말이 없었다.

나는 다짐했다. 복수해야겠다.

이 교수님은 위에 언급했듯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계셨으며 시험 문제 또한 그에 걸맞게 엄청난 양을 내셨다.

보통 한 시험에 7문제 정도 나왔는데 대문제가 7문제고 각 대문제마다 소문제(보통 증명문제)가 10 ~ 13개 가량 있었다.

난이도도 상당했는데 마지막 7번 문제는 대놓고 Bonus 라고 적혀있었다.(풀지 못할 문제, 점수는 infinite)


이렇듯 어마어마한 문제에 걸맞게 시험 시간 또한 어마어마 했다.

보통 시험기간 전 주로 날짜를 정하여 저녁 시간에 시험을 봤는데, 시험 시간은 150분 + @ 였다.

이 + @ 가 무엇이냐, 시험을 치는 사람이 0명이 될 때 시험이 종료 되는 것 이었다.

한마디로, 시간 제한이 없었다.

시험에 대한 교수님의 신념은 이러하였다.


"저는 시간이 부족해서 문제를 못풀었다는 소리를 듣기 싫습니다. 여유롭게, 그리고 즐겁게 문제를 풀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거다.

나는 교수님에게 복수할 방법을 생각해냈다.

바로 시험을 끝내지 않는 것 이었다.

결혼 준비로 한창 바쁠 교수님을 괴롭히기에는 이만한게 없을 것 이라고 생각하였다.


한 주 내내 과제와 퀴즈로 괴롭힘을 당한 후, 약속의 금요일이 되었다.

저녁 6시반 시험 시작 예정이었고 나는 악에 가득 차있었기에 저녁을 든든히 먹고 시험을 치러 들어갔다.

예상대로 문제는 굉장히 어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앓는 소리가 곳곳에서 퍼져나왔다.

그 소리를 들으며 즐거워하던 교수님의 표정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과장 없이 실제로 웃으며 즐거워하심)


시험을 치기 시작한지 2시간째, 금메달 리스트가 등장했다.

4시간째, 어느덧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갔다.

5시간째, 교수님도 많이 지치신듯 하다. 시험을 치르는 강의실에는 나를 포함 3명의 수강생만이 남았다.

6시간째, 어느덧 시간은 정각을 지나 토요일이 되어있었다. 나 역시 정신적으로 한계를 느꼈다.

이때 교수님께서 달콤하게 속삭이셨다.


"시간..더 필요한가요?"


내 안에 가득찬 악은 어느새 싹 사라지고, 제발 침대에 눕고 싶단 생각만이 가득했다.

그도 그럴것이 시험을 치는 6시간 내내 내 두뇌는 온갖 토폴로지에 의해 처참히 녹아내린 상태였다.


결국 나는 항복하고 말았다.


"저..제출하겠습니다.."

"수고했습니다. 남은 시험 열심히 준비하기 바랍니다."


새벽 1시, 시험을 마치고 강의동을 나오는 길은 이상하게 시원하고, 후련하고, 또, 뿌듯했다.



여담...

놀라운 사실은 그 날 시험을 마지막으로 마친 사람은 내가 아니었다.

교수님께 들어보니 그날 시험은 새벽 2시반까지 이어졌고,

마지막 남은 학생과 함께 퇴근한 교수님은 그 학생과 학교 앞 국밥집에 가서 국밥을 한그릇씩 먹고 헤어졌다고 한다.

그 학생은 청강생이었으며, 그 시험에서 1등을 했다.

교수님은 여전히 열정 가득하시며 과제와 퀴즈 시험으로 학생들을 즐겁게 해주고 계신다고 전해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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