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시베리아나

유리는매일내일
2019-07-11 15:17:58 108 1 2

일러두기)여긴 장르소설이 주류인 갤러리 같습니다만 애석하게도 전 장르소설이나 대중적인 스타일에는 아직 익숙치 않은 관계로 그런 면은 좀 부족합니다. 발상이 가는데로 썼기에 구조적 엄밀성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지적할 수 있는 부분을 지적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제목은 속옷밴드-시베리아나에서 따왔습니다.




저 멀리서부터 위압적이고, 점점 커지며, 권위적인 소리가 터벅터벅 소리와 함께 복도를 울리며 다가오고 있다. 그 터벅거림 바로 뒷편으로 질질 끌리는, 땅으로 꺼지는 소리는 한 환자의 마지막 순간을 운구했다. 바퀴 소리가 어느 순간 멈추자 울음소리가 가득했고 삐걱거리는 소리와 고성이 오갔다. 언제나처럼 누구는 살려냈지 않냐, 살려내라, 최선을 다 했습니다,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런 말들이 오간 후엔 이따금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다시금 정적의 발소리가 그것들을 묻어버리며 가득 채운 복도가 돌아왔고 그 복도를 가로지른 발걸음은 어느새 내 앞에 도달해 있었다.


이제 며칠 있으면 퇴원이다. 여기에 어떻게 왔는지는 기억이 잘 안 난다. 의사 말로는 밖에 나가는 길에 무슨 트럭에 치였다던가 그래서 왔는데 무방비 상태에서 치인 것 치고는 꽤 운 좋은 편이라고 했다. 원래는 나 같은 상황이면 장기 터지고 대량 출혈에 지금 여전히 다음 수술 기다려야 한다는데 난 단순 골절 몇 개라서 적당히 이어붙이고 걸어다닐 수 있는지 확인 몇 번 하면 퇴원이니 참 편한 경우라고 한다. 그런데 결국 이 말은 그 지겨운 발소리를 앞으로 며칠은 더 울려퍼지는 것을 용서해야 한다는 뜻이다.


사실 오늘만 울려퍼진 건 아닐 것이다. 그의 배가 불룩해지고 그의 직책이 올라간 시점부터 복도는 그의 발걸음이 울려퍼지도록 되었을 것이다. 환자들은 누구던 간에 특유의 권위적인 울려퍼짐을 두려워하는 것은 병원이라는 것이 생긴 이후부터의 오랜 관습이었다. 내 옆에 누워 있는 환자는 곧 숨을 거둘 것 같이 숨을 헐떡거리지만 지금 내 앞에서 조언을 지껄이는 사람은 눈도 하나 깜짝 않고 발만 겨우 옆으로 가누어 위험한 건 아닌가 할 뿐이다. 분명 저 상태인 것은 오래 되었을 것이다. 저 환자는 숨을 거두진 않겠지만 아주 오랫동안 헐떡거림의 갈망으로 인해 자신의 생애가 위협받음에도 존중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다가 다시 그는 잠들었다. 정확히는 숨을 거둔 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심장박동의 직선이 완전히 정지하지는 않았다. 의사는 그와 동시에 발의 각도를 나에게 옮긴 뒤 결국 "잘 챙겨라" 정도일 말을 길게도 늘어놓는다. 난 복합 골절이니 단순 골절이니만 해도 구체적으로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다리뼈 두세 개 부러지면 복합이고 한 개 부러지면 단순 골절이겠지 썩을. 일단 그 지겨운 말씀에 난 다리가 저리니 슬슬 나가보고 싶습니다. 의사는 복도로 걸어나가며 다시 그 커다란 발걸음을 복도 전체에 울려퍼지게 했다. 그 퍼짐은 점점 잦아들었지만 박자는 언제나 일정했고 압도하고 있었다.


일단 근질거리는 다리의 지루함을 풀기 위해 링거를 달고 복도를 걷는다. 나는 의식적으로 내 발걸음이 아주 울려퍼지도록 걸어보지만 그 소리는 그대로 흩어져 사라져버린다. 이런 딸딸이로 아무리 크게 소리를 내어봐야 질질 끌는 소리가 아주 길게 늘어진 것과 다른 것이 없으니 결국 난 의사의 흉내조차 내보지 못 하고 퇴원을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허무한 마음에 그냥 슬리퍼를 지독하게 질질 끌어보았다.


질질 끌리는 소리가 병원 안에서 깊게 복도를 울리는 것이 내가 상스러운 환자임을 내보이는 것과 같다. 차라리 그렇다면 철저히 상스럽고 지독한 환자이고 싶지만 교통사고 하나에 단순 골절 정도 되어 드러눕다 가버리는 사람이다. 지독한 내장 파열, 어디부터 시술해야 할지도 모를 복합 골절, 근육 괴사라면 이렇게 하는 것이 차라리 나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며 우울하게 슬리퍼를 질질 끌며 슬리퍼를 쳐다보며 슬리퍼가 흔들리는 방향에 따라 어지러이 걸었다.


그런데, 갑자기 슬리퍼가 눈 앞에서 사라졌다. 더 정확히는, 나의 발이 사라졌다.


난 그 순간 이미 늦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비명소리는 이 복도를 날카롭게 가로질렀다. 암전, 그러니까 정전이다. 바깥 날씨부터가 구름이 지독시리 낀 밤인데 정전이 되서 빨리 돌아오지를 않는다. 이 시간에는 원래 휴식을 취하기 위해 돌아가야 하지만 돌아가려고 해도 앞에 보이는 게 없으니 방향을 분간할 수가 없다. 병원에서 관계자들이 라이트를 들고 있는 경비를 대동하고 뛰어와서 난리들이다. 빨리 회복될 문제라며 일단 환자실로 돌려보내어졌다. 적막 속에서 다시금 헐떡거리는 소리가 옆에서 정적을 깨는 것이 이럴 때는 또 반가웠다. 언제나처럼 헐떡, 끄륵, 헐떡, 끄륵.


죽음과 삶의 경계라는 게 이런 것이라는 느낌이 들기보다는 빨리 가래 끓는 걸 좀 뱉어볼 순 없나 싶은 생각이 우선 들곤 했지만 간호사가 말하길 가래는 없다고 한다. 가끔 가래가 생기는 경우가 있어도 그땐 아예 숨이 막히기 때문에 빠르게 조치를 하곤 했다. 그 숨막힘의 소리에 맞추어 기계는 일정하게 그의 위험을 허수아비처럼 경고할 뿐이었다. 그런데,

                                                                             삐이이이이이이이익.


저편에서 커다란 음이 하나 울렸고 권위적인 발걸음들 수백 개가 이 복도를 강하게 박차고 달려나가기 시작했다. 순간적으로 빛이 스쳐 지나갔고 권위적인 발걸음들에서 처음으로 난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흩뿌려진 소리가 너무 웃겼다. 그런데 그 다음 상황이 문제였다. 의사들이 온갖 용어들을 이야기하는데 적어도 '빨리' 하나는 알아먹을 수 있었다. 불친절한 비프음은 어설프게 지속되었지만 점점 약해졌고 종내는 다시 깊은 삐익 소리를 내며 정적에 빠졌다. 그들의 고성이 비프음을 대체했다.


그 후 다른 종류의 발걸음이 복도를 덮었고 곧 맹렬한 고성과 육박전이 벌어졌다. 그 때 병실은 밝아져왔다. 그러자마자 상태가 좋은 나를 포함한 몇몇이 밖을 나갔고 환자의 시체를 곁에 두고 의사들은 고개를 숙인 채 미안하다는 말만 연신 전했고 종내는 멱살을 잡혔다. 이후 모 주간지에서 왔다는 기자도 들이닥쳐 설명해달라 했고 역시나 미안하다는 말만 전했다. 이 일은 목격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림으로 이야기되었고 다음날에는 이 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면 한다며 잠시간의 병실 간의 단절을 선언했다. 권위는 철창을 만들었다.


나는 그 철창에 갇히어 결국 죽어버린 이의 보호자가 병원에서 끌려나며 단말마처럼 외치는 절규와 호소로만 그 모든 소식을 들어야 했고 이후에 전문적인 용어로 어떻게든 얼버무리라는

말을 했다. 결국 아무 것도 보이는 게 없는지라 내 눈은 오랫동안 그 광경을 보고 들을 수 없었다.


일어났을 땐 병실에 햇빛이 가득 찼지만 새가 지저귀는 이상적인 상태는 아니었다. 권위는 살벌함으로 바뀌어 오늘은 누가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닐까, 좋게좋게 넘어갔으면 하는 헛된 바람이 계속해서 소리들을 붕 떠오르게 만들고 있었다. 더 이상 환자들은 위압감을 느끼지 않았고 오늘은 더 이상 헐떡거리는 소리도 옆에서 들려오지 않았다. 그는 결국 오랜 헐떡거림 끝에 내가 잠든 사이에 마지막 헐떡거림을 멎어버렸다고 한다. 이젠 병실을 나설 때까지 잠을 잘 때 조금은 편안할 지도 모르겠다.

댓글 2개  
이전 댓글 더 보기
▲윗글 갤러리 버튼 수정을 어떻게 좀... 유리는매일내일
광고
낙서추천문학&시창작유머
0
11-12
2
창작
나만의 장례식 [2]
자키
09-18
1
09-05
1
낙서
제가 읽은 소설모음 1 [2]
cashmoneyhetero
08-09
2
07-22
0
낙서
갤러리 버튼 수정을 어떻게 좀... [1]
유리는매일내일
07-11
»
창작
시베리아나 [2]
유리는매일내일
07-11
9
06-06
1
05-31
0
05-17
0
05-10
0
낙서
로판 재밌네요 [2]
피어나다
05-10
0
낙서
조아라에서 볼만한 소설 뭐가있을까요? [2]
여긴ㅇㅅㅇ안해서좋네
05-08
0
05-08
0
낙서
문피아 공모전 베스트... [2]
뚝배기사냥꾼
05-08
2
05-08
77
05-08
인기글 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