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작 희곡 편안함과 암전 사이

Global Moderator 유리는매일내일
2019-07-05 21:23:28 35 0 0

:1990년대 후반의 어느 밤

:전선이 어지럽게 얽힌사람을 속박하는 방 내부

 

등장인물)

남성

여성

남자

여자

 

일러두기)남자와 여자는 전선에 몸의 부위를 얽힌 채로 연기한다감전을 방지하기 위해 물론 모든 전선은 소품으로 두어야 한다시간과 시간의 전환은 밝기의 변화로 나타내지 않고 AMPM만이 커다랗게 새겨진 계기판 하나를 둔다.

사각의 창을 회색 벽에 걸어두되 그 바깥에는 항상 어둠 사이로 스며나오는 일부의 LED 등이라는 거의 완전한 어둠이도록 한다방 안에는 거울과 세면대면도기를 소품으로 둔다. 면도기는 물론 움직일 수 있고, 여기서 세면대와 거울은 움직일 수 있도록 한다.

 

1

 

1

 

남성과 여성방으로 걸어들어온다그들의 발걸음 소리는 의식적으로 내는 듯 아주 크게 들린다그러다 발걸음이 멈추는 순간 그들은 방에 들어설 즈음이고 그 때 조명은 아주 밝아온다방에 들어서는 직후 남성은 입구에 멈추어 서고 여성은 더 나아가 벽 중간에 선다.

 

남성:어느새 밤인가세상 새까맣네어으들어간다아-

여성:또 얼굴이 이 모양인가 머리도 정리 안 되는 거 봐 어휴..

 

남성이 방 안에 들어서 두 걸음 정도를 걷고 이 때 클릭하는 소리가 걸음마다 들려온다. 걸음을 옮길 때마다 약간의 잡음이 점점 커지되 충분히 작은 볼륨 내에서 커지도록 한다.

 

남성:어디까지 이야기했더라.

여성:아마... 한 번 더듬어봐요. 1-0의 축구 이야기를 했던 게 마지막인가요?

남성:아니... 아니야. 1-0이었던 게 1-2로 뒤집혔고 그 후엔 다른 이야기로 넘어갔어그러니까... 그 전에 이야기했던 진드기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서 했던가?

여성:그건 제가 징그럽다고 단칼에 쳐내서 무산된 걸로 기억합니다.

남성:잠깐만... 그렇군. 그래, 그런 다음에 '사과'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말았다. 그렇지, 사과였어. 마지막으로 '사과는 어떤 건가요?'라고 물었지.

(사이) 이미 우리가 잡을 수 있는 많은 것들은 진부할 정도로 기나긴 비유들이 이루어졌어. 지금 이야기하는 사과만 보아도

죄악의 시작, 과즙, 산실, 풍족함 등등등. 그런데 우린 이렇게 많은 상징들을 붙이면서 이야기해도

결국 동어반복과 아무런 차이가 없어. 그러면서도 무언가에 빌어서 이야기를 하곤 하지.

결국 너의 질문은, '어떤 것은 어떤 건가요?'라는 질문과 차이가 없단 뜻이야.

여성:하지만 고통이라는 것을 묘사하기 위해선 결국 비유라는 게 필요하지 않나요?

우리가 느끼는 '100%의 고통'이라는 게 있나요?

'바늘에 찔린 것 같은 고통', '망치로 얻어 맞은 듯한 고통', '움직일 수 없는 정도의 고통'(이 때 '같은'과 '정도'를 강조할 것)

이것들은 우리의 체험 없이 결국 우리의 상태를 묘사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이죠. 이 단어들이 '10%의 고통', '30%의 고통', '100%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는 증명법이 있나요?

남성:실제로 일어난 것을 묘사하면 될 뿐이지.

근육에서 고통이 느껴진다면 '근육이 아프다', 심장이 아프다면 '심장이 아프다', 그걸로도 묘사할 수 있는 건 많다고 보는데.

여성:'아픔이 있다'와 '아픔의 정도가 있다'는 말이 다르다는 것은 알죠?

남성:(사이)표현 양식은 차용이 아니야, 사용이지.

아무리 멋들어진 미사여구가 아니어도 결국 전달하려는 의도가 있다면 충분해.

적어도 여기에서, 우리가 하는 건 연설이 아니라고.

여성:(사이)그러나 우린 어떤 문장 구조를 차용하고 있는 셈이죠.

우리는 교과서에서 본 문장 중 몇 개의 구조를 지금에도 사용하고 있잖아요?

감탄사는 특히 피할 수 없는 교과서적인 교육의 산물이고 말이죠.

 

계기판은 PM에서 AM으로 전환된다.

 

남성:이런, 이미 드라마가 시작할 시간이구만.

여성:전 드라마에 딱히 관심이 없는데..

(의구심으로)어떻게 드라마라는 것은 그렇게 재미있어들 하는 걸까요?

남성:(유쾌하게)하하, 전개라는 것은 피상적이기 때문이지.

우리가 실제로 경험하는 사람의 육체라는 것을 통해 우리가 경험할 수 없는 일들을 저질러. 그리고 그들은 엎질러 지는 경우가 많지.

마치 슬랩스틱 코미디 같은 거야. 한 가지 차이라면, 거기에 감정이라는 것을 좀 더 다양하게 넣은 거고.

슬픔, 감동이라는 그 피상적인 덩어리들을 적당히 데쳐 놓으면 그것이 드라마야.

여성:언제나 어떤 말을 하는지 감은 오지만, 그럼에도 흥미는 생기지 않는군요.

일단 시간이 되었으니 다음에 보도록 하죠.

 

남성은 말 없이 사라지고 다시 한 번 발걸음마다 클릭소리가 나더지 방 밖으로 나가면 그 소리가 사라지고 발자국마다 점점 잡음이 약해진다.

완전히 잡음이 멎으면 여성은 세면대 앞으로 간다.

 

남성의 발언 들려오다 서서히 왜곡되어 퍼진다. 여성은 태연히 화장을 한다.

 

(암전)

 

제2장

 

남자와 여자, 완전히 포옹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계기판은 AM을 가리키지만 하늘은 역시나 어둡다. 잡음 강하게 울린다.

 

남자:(세면대 앞에서 면도를 하며) 아, 그래, 이 느낌. 수염이 완전히 갈려나간다는 이 기분이 참 용하단 말이지. 기괴하다면 기괴하지만, 수염을 미는 중간에는 분명 우리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지. 하지만 완전히 갈리고 나면 얼굴은 철저히 세척되지. 하지만 세척된 상태라는 것은 다음날만 되도 다시금 파괴돼. 수없이도 자라난 수염이 우리를 원형에서 밀어내거든. 어디 보자, 어제 들었던 멜로디가 이런 것이었나. (잘못된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아, 아니다. 이거지. (아무렇게나 흥얼거린다)

여자:세면대 앞에서 왜 그렇게 질질 끌어요, 여기 사과 깎아놨으니까 가져가요.

남자:오, 그렇군. 여기서 휫파람 연습 좀 한다고 말이지. 가고 있어.

여자:(화장실로 가 세면대를 거실에 옮겨놓는다.)당신이나 나나 어차피 별로 오래 갈 수 없다는 건 알고 이러는 거죠?

남자:당연하지, 지금도 곧 전기가 끊기면 아무 말 없이 있어야 되는데. 언제 공급이 될 지 우리는 알 수가 없는 상황이고.

여자:(거울을 옮기고 세면대를 가리키며)그럼 적어도 세수라도 빨리 해둬요. 또 얼굴 안 씻고 잠들면 구린 냄새 맡아야 하니까.

남자:얼굴 안 씻고 온 것도 알고 있구만. (사과 한 조각을 우물거리며)이렇게 하는 것도 참 불편하단 말이지.

여자:당신은 좀 더 씻어야 해요. 그래, 화장품의 이 느낌은 불쾌한 감정을 좀 가시게 하는 군요. 이상하지만 이상하면서도, 이것을 얼굴에 문지르면 우리들의 피부는 철저히 뭉개지지만 결국 윤기 흐르는 탄력의 피부라는 결과물이 나오고, 내일이면 다시 퍼석해지죠. 그러니까 어제 나온 드라마 대사 중에 "우린 결국..." 아 아니다, "결국 우린 피부라는 것을 가지고 사는 이상"인 거에요.

남자:요즘은 드라마도 참 어렵네. 대사가 그럴 이유가 있어?(곧 고꾸라진다.)

여자:(여자는 남자를 쳐다보고 있지 않다.)국 우리는 형식을 벗어날 수가 없어요. 잠에 드는 상태인 것도... (침묵)

 

남자와 여자, 자신들의 상태 그대로 멈추어버린다.

남성과 여성, 걸어들어오며 클릭 소리 들려오다 잔향처럼 퍼지고 방을 나간다. 이 때 계기판 PM으로 전환되었다 다시 AM으로 전환된다.

남자와 여자, 다시 깨어난다.

 

남자:여보, 어쩌다 세면대가 여기 있지?

여자:그러게요, 흠... 어떻게 된 거지?

남자:혹시나 이거 한 번 들어봐요 움직여지나.

여자:(세면대를 불쑥 든다)어머나,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남자:(깜짝 놀라)이, 일단 내려 봐!

 

남자는 세면대의 물을 틀고 세면대의 물은 정상적으로 나온다.

 

남자:이, 이게 무슨...

여자:일단 가장 정상적인 장소로 되돌려 놓는 것으로 하죠. 화장실로 말이에요.

이 정도는 결국 이 세계에서 특별한 일일 수가 없다는 건

잘 알고 있잖아요?

남자:그렇더라도 이 정도로 부실한 구조는 잘못된 거지. 수염도 자랄 정도의 세계라면 어느 정도 안정성이 있어야 되는 거 아냐?

여자:그것은 우리들의 존재 양식에 관한 것이고요.

사물은 우리들의 존재양식에 별로 관여하지 않잖아요?

남자:사과나 하나 줘 봐.

그런 이야기로 치다는 건 지루하다고.

 

사과를 깎는 소리와 함께 천천히 암전. 남자와 여자는 가장 안정적인 자세로 멈추어 대기한다.

 

제3장

 

여성과 남성은 대립구도인 것처럼 서로를 바라보고 가까이에 서 있다. 그들의 손의 연결은 가식적이다.

 

남성:어쩌면 우리들에게 필요한 단어는 매우 한정되어 있어.

어제의 비유화법의 이야기에서 좀 더 발전시켜보지.

우리들이 느끼는 감정이라는 것도 결국 누군가가 입력할 수 있는 요소가 될 거야 미래에는.

그렇다면 결국 우리들이 느낀다고 자부할 수 있는 감정 이전에

상태, 그 자체만을 표현하면 되는 것 아닌가?

여성:안드로이드 논쟁인가요?

우리들은 인간으로 구분되기 위해서 도대체 무엇을 해야 하는 거란 말이에요?

남성:그런 건 없어.

결국 장래에 전기를 공급받는 사람이던

공급받지 않는 사람이던

별차이가 없어질 거야.

여성:우리도 여전히 암전되는 존재란 뜻인가요? 분명 우리가 잠드는 순간은 우리가 어느 정도 결정할 수가 있잖아요?

남성:결국 전선이 꺼진다고 '로봇'이라는 존재가 편안해지는 일은 없어.

여성:우린 잠에서 깨어나면서 개운함을 느끼죠. 그 전에 편안함을 느끼지 않고 느낄 수 있는 개운함이란 도대체 무엇인가요?

남성:(이해할 수 없다는 듯)그것이 왜 무조건 편안하다는 감각에서 시작되어야 하지?

'망각'도 개운함의 증거일 수 있지. 모든 것을 잊어버린 순간에는 일단 최초의 감정을 느껴야 하지 않나?

여성:그것을 무엇으로 표현하죠? 그 땐 아는 게 없을 텐데, 그렇다면 어떤 방식의 표현이 일어나죠?

남성:(당황하여)그, 그렇지... 그래...

침상에서 일어난 순간에 일어나는 감정이라는 건 분명 있지만

그것을 표현할 수 없는 이상에는

우리는 침묵해야 한다....

아니, 이게 아닌데...(머리를 쥐어싸맨다)

여성:그것이 당신의 한계라는 거에요.

오랫동안 말해왔잖아요, 내가 당신의 그런 난해하기만 한 표현법으로는

절대 아무 것도 이야기할 수가 없다고.

남성:닥쳐, 닥치라고!

 

남성의 절규는 점점 전자음으로 바뀌어가고 남성의 손동작마다 클릭소리만 어지러이 울린다.

 

그러다 남성과 여성 정지하고, 남자와 여자 깨어난다.

 

남자:조금은 오랜 이야기 같은데, 드디어 우리들의 시간인가.

여자:이제 우리에겐 자유의지가 있는 셈이죠.

남자:하지만 이들 각각에 우리들의 영혼이 잔여되어 있음은 바뀌지 않아.

여자:그렇다면 '편안'이라는 감정도...

남자:그렇지, 표현법이 존재하는 한에는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것은 증명되었지만

이 상태가 계속되는 이상에는 계속되지 않아.

우리들은 이 전선에 의해 편안이라는 감정을

끝없이 주입받는 한편으로 위협받고 있으니까.

여자:그렇죠.

남자:어디 보자, 면도나 할까. 아, 그래, 이 느낌. 수염이 완전히 갈려나간다는 이 기분이 참 용하단 말이지. 기괴하다면 기괴하지만, 수염을 미는 중간에는 분명 우리들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지. 하지만 완전히 갈리고 나면 얼굴은 철저히 세척되지. 하지만 세척된 상태라는 것은 다음날만 되도 다시금 파괴돼. 수없이도 자라난 수염이 우리를 원형에서 밀어내거든. 어디 보자, 어제 들었던 멜로디가 이런 것이었나. (잘못된 멜로디를 흥얼거린다) 아, 아니다. 이거지. (아무렇게나 흥얼거린다)


여자:오늘 빨래가 잘 말랐으려나, 잠시 밖에 나가보고 와야겠다. (여자는 문 뒤에서 어슬렁거린다.) 그래 이 느낌이야. 이 모순된 느낌. 분명 내거는 순간엔 축축해서 뭉개진 것 같지만, 이렇게 말끔해지는 순간 말이야. 하지만 이렇게 말끔하다는 것도 오래 가지 못한 채로 다시금 얼룩이 지곤 하니까.


(여자는 건조된 세탁물을 방안으로 들고 온다.)


여자:이게 남편 속옷이고, 이게 내 속옷...

남자:세탁한 거야? 참 많기도 많다.

여자:우리들의 존재도 이만큼 팡팡 쳐서 펼쳐질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복해요?

남자:(웃으며)맞다, 맞아.


삐걱거리는 소리 들려온다. 계기판은 자연스레 탈락한다.


남자:무슨 소리지? 어? 여보, 시계가 어디 갔지?

여자:아니 벽에 걸어뒀... 없잖아?

남자:누가 또 그새 훔쳐간 거야?

여자:아, 아니... 비싼 시계는 아니지만 쓰는 맛이 있었는데...

남자:이젠 또 뭐야? 어, 전등이..?

 

남자와 여자, 꺼져가는 전등과 떨어져나간 계기판을 본다.

 

남자와 여자:아, 안 돼!

 

남자와 여자, 발버둥치며 기도한다. 암전 되고, 클릭과 발자국 소리 번갈아가며 들린다. 소리들은 에코처럼 잔향으로 울려퍼지며 감쇠한다.

 

(끝)


============


여기에서 "무언가에 연결된 인조인간"이라는 느낌을 가져오고

여기에서 클릭 사운드의 발상을 가져왔습니다


원래는 저 클립의 내용 자체를 완전히 풀려고 했는데(그러니까 편안함과 단순한 고통의 문제) 아직 희곡에는 능력이 딸려서 거기까진 못 하는 관계로 다음에 이 주제에 관해 좀 더 묘사를 시도해보고 싶습니다

댓글 0개  
이전 댓글 더 보기
▲윗글 첫 작품 결산 유리는매일내일
▼아랫글 벗어나도록 유리는매일내일
광고
공지자작 희곡과거 희곡(저작권 준수)희곡 평론희곡 공연(저작권 준수)자유글
0
자유글
바람잡이 새의 노래(예고)
Global Moderator 유리는매일내일
07-28
0
자유글
바람잡이 새의 노래
Global Moderator 유리는매일내일
07-28
0
자유글
일단 여기까지.
Global Moderator 유리는매일내일
07-25
0
자유글
일단 계속 미루면 안 되니 서문
Global Moderator 유리는매일내일
07-25
0
자유글
작품 구상이나 기타
Global Moderator 유리는매일내일
07-21
0
자유글
첫 작품 결산
Global Moderator 유리는매일내일
07-06
»
자작 희곡
편안함과 암전 사이
Global Moderator 유리는매일내일
07-05
1
자작 희곡
벗어나도록
Global Moderator 유리는매일내일
06-30
공지
기초 규칙
Global Moderator 유리는매일내일
06-29
공지
06-29
인기글 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