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그것이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기록적으로 많은 양의 말이었다고 한다.
1.
성당의 문을 두드려 아주 천천히 들어가 보았지만 결국 바닥은 삐걱대는 소리를 냈다. 다행히 지면 바로 위에 바닥이 깔려 있는 형태이기에 혹시 부서진다고 해도 당장 내가 추락해서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걸을 때마다 삐걱대는 것이 마치 슬랩스틱 코미디의 한 장면 같다. 내가 걸음을 걸을 때마다 성우 한 명이 오리가 꽥꽥대는 소리를 내주고, 관객들이 웃는 효과음이 이어서 재생되는 그것 말이다. 느린 걸음으로 걸으면 성우는 작은 소리를 내주어 최대한 천천히 걸어 2층에 다다랐다.
그곳엔 목재로 만들어진 의자의 반대편으로 성경을 놓아둘 수 있는 받침대가 달린, 전형적인 성도들의 장소였다. 성모 마리아와 예수를 새겨 넣은 스테인드글라스의 섬광은 한가운데로 사영하는 시간이었으나 너무 오랜 시간이 지나 녹이 슬어 헤프게 아로새겨졌다. 그런 섬광을 맞으며 헤프게 웃어보았다. 햇빛이 뜨뜻한 것이 나쁘진 않았지만 일그러진 상들과 함께 웃는 것이 꺼림칙해져 나오고 말았다.
중앙으로부터 바깥에까지 맴돌다 이상한 것을 두 가지 발견한다. 하나는 장갑이고, 다른 하나는 니삭스였다. 장갑의 손가락들이 제멋대로 헤어져 있었지만 니삭스는 멀쩡했다. 그 둘을 보는 순간 어젯밤을 새워 보았던 잡지가 떠올랐다. 거기에서 한 여성이 볼링을 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는데, 화보 섹션들이 으레 그러하듯 과장된 동작으로 자신의 허벅지를 강조하고 있었다. 볼링 장갑과 니삭스를 같이 하고 있는 것이 포인트였다.
그 잡지를 따라해보려 입어 보았는데 장갑은 크기도 작아 내 손에 제대로 들어가지 않았다. 결국 어설프게 낀 채만 하고 니삭스를 신어 공을 굴렸다. 아무리 해 보아도 그 과장된 폼으로는 한 게임에 150점도 따기 힘들 것 같았다.
2.
그리고 니삭스와 장갑을 벗어 이래저래 쳐다보다 둘에 적힌 숫자가 같은 것을 발견한다. ‘1934’
즉 85년짜리의 시대를 헤쳐 여기로 전달되어 온 것들 중 이 성당에 신성 없이 남아 있는 것은 장갑과 니삭스 뿐이었다는 것이다. 장갑은 내 손에 맞지 않아 오랜 탐문은 불가능했지만, 니삭스는 거쳐온 시간에 비해 비정상적으로 온전했고, 또한 내 몸에 매우 어울리는 크기였기에 실험을 해볼 흥미가 생겼다.
니삭스의 안쪽에는 다양한 글자들이 새겨져 있었다. 대부분의 글자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들이었기에 읽지도 못했지만, 단 하나 내 모국어만큼은 잘도 읽을 수 있었다.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있었다’는 단어는 감쪽같이 사라져 있다. 여기에 있는 문장들도 이런 식으로 단어들을 빼놓은 걸까? 성경의 시작인 창세기의 두 번째 창조의 구절에서 있음을 가져가버렸기에 없음 또한 사라져버렸다. 그 순간 모든 세계의 창조의 원인, 결과, 과정이 일그러진다.
니삭스를 뒤집어 신고 오랫동안 그 구절을 바라보며 고민했지만 나오는 건 없었다. 제모를 했던 다리에 감기는 편안함은 나를 졸리게 만들어 지루한 이 글자들에 대한 탐구는 더더욱 느려져 갔다.
결국 대낮의 성당에서 눈을 천천히 감았다. 언제쯤에나 일어나 있겠지.
1.
발이 걸어가는 세계로,
발이 걸어가는 세계의 바깥에서 발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사이로,
섬광은 언제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듯 사람들의 위장으로
들어가 창조되었다.
2.
아마 시편을 이야기하던 당시일 겁니다. 그래요,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였죠. 성당의 한가운데로부터 커다란 불이 번져나기 시작했습니다. 다들 깜짝 놀라서 밖으로 나왔고, 다행히 죽은 사람은 없었죠. 여기까지는 어쩌다 불이 피었나 보다라는 뻔한 이야기일 테지만, 문제는 이 다음부터죠. 이후 그 성당에서 성경을 읽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들은 불이 타오르는 건물 내부에서 창세기를 이야기했습니다. 이야기라기보다… 그래요. 멱 따는 소리, 비명 지르는 소리에 가까웠죠. 그럼에도 그들의 구절을 듣지 못한 사람은 성당의 울타리 안에선 없었습니다. 그 소리가 끝나고 성당을 다시 들어가는데 사람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고 나무를 의식한 장식품이 하나 있었습니다. 옷가지들을 이것저것 주워다 만든 것이었는데, 제가 잘 알고 지내던 아저씨 한 명이 그걸 건드린 순간 다시 불이 시작되었고 대부분의 사람은 그걸 피하지 못한 채로 쓰러진 거죠. 전 끝나자마자 바로 나가려고 대충 안팎을 왔다갔다 했기에 빠져나왔으니 다행이죠. 이후에 옷가지가 아직 남아있다니 하는 소문이 들려오는데, 전 그 일에 신물이 나서 다신 그 성당을 찾아가진 않습니다. 예수의 이름이 빛날 수 없는 곳이었던 것임이 분명합니다.
3.
일어났을 땐 까마귀가 울고 있었다. 이상할 노릇이었다. 대낮에 자서 이렇게까지 오래 잘 정도는 아닌 것 같았는데, 어쨌든 이제 밖을 나가야겠지, 하는 순간.
내 발이 철저히 하얗게 변했음을 바로 알아차릴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만이 지금 밤의 성당에서 빛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더 정확히는, 이 발에 입힌 니삭스가 빛났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자 내 몸이 새까맣게 변해 있었다.
몸을 씻어내어보아도 마찬가지였고 그럴수록 니삭스는 더더욱 빛을 발했다. 기독은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는 동안 서민들의 입에서 울려퍼진 삼전음처럼 말이다. 결국 새까만 채로 내일 출근을 위해 이것저것을 준비했다. 이 고물은 간단한 서류 10개도 제대로 안 들어간다. 또 찢어지려고 한다. 겨우 집어넣어 방밖을 나갔다.
그런데 사람들이 의문을 제기한 것은 다른 구석이었다. 내 겉모습모다도 내 손에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의 눈에는 내 손가락이 사라지고 일그러져 있다는 것이었다. 내 눈에는 내 몸이 새까맣게 변한 게 문제임이 분명한데, 그들은 내 모습은 새하얗다고 했다.
결국 손에 붕대를 차고 일찍이 퇴근해 집 안을 다시 들어섰고, 이젠 방을 가득 메운 섬광을 내뱉는 니삭스를 어떻게든 질책하려 발에 신자,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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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 글이 마지막 작품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만 많이 아쉽더군요. 이 작품을 마지막으로 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