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병들은 들으라.
한 때 전란을 틈타 왕좌를 탐한 폭도를 몰아내고자 수많은 군웅들이 출사했다.
하지만 자격 없는 자는 이내 스스로 고꾸라졌고, 명분 잃은 자들은 짐승의 무리로 돌변했다.
감히 천하를 논하며 서로를 물어뜯고, 이간질하며, 협잡을 일삼으니
땅의 주인이 누구든 그저 살아남고자 했던 민초들만 의미 없는 살육 아래 무수히 희생되었다.
이 한동숙만이 아무 것도 없는 진군 땅에서 오직 의를 위해 칼을 들었던 그 때를 잊지 않았다.
무뢰배들의 세력 놀음에 버려졌던 낙양을 수복하고 한을 다시 세우고자 했던 이가 누구인가?
충직한 한의 신하로서 그저 한 치의 욕심 없이 내 손으로 백성들의 삶을 지켜낼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역도들이 끊임없이 이 낙양과 중원을 노리며 나를 회유해도 그저 칼과 화살로 답할 뿐이었다.
하지만 권력에 미친 금수들은 끝내 왕을 참칭했고, 나는 도탄에 빠진 전국의 백성들을 외면할 수 없었다.
정강과 같은 도적의 무리를 뿌리째 뽑았고, 청주의 역적들 또한 치열한 싸움 끝에 모조리 참했다.
온전히 중원을 수복한 뒤에는 황하를 건넜고, 폭정에 신음하던 하북의 백성들도 해방시켰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주제도 모르고 한 고제의 후손을 사칭하는 유비를 멸하기 위해 이 땅에 다다랐다.
대의를 위해 싸우며 셀 수 없는 희생을 거쳐왔지만 한 시도 잊은 적이 없다.
미숙하고 어리석었던 젊은 날의 나를 보좌하다 쓰러져 간 병사들과 봉효.
비열한 기습에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한 이들의 피로 물든 황하와 걸갑수 선향서, 조패향.
파촉의 험준한 길을 뚫기 위해 기꺼이 선봉에서 희생한 나의 아들들 조앙과 조맹.
이들의 위대한 활약을 가슴에 품되, 결코 함부로 그리워하지 말라.
그저 칼을 벼르고, 나 자신과 군마를 든든히 먹이며, 눈 앞의 적을 베어넘겨라.
장차 평화를 누릴 내 옆의 전우와 고향의 가족들을 위해 용감히 싸워라.
훗날 우리의 활약에 천하에 적이 남지 않게 될 그 때, 비로소 온전히 모두의 넋을 기리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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