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had this thought a while ago
'My darling cannot understand
What I have done, or what would do
In this blind bitter land.'
And I grew weary of the sun
Until my thoughts cleared up again
Remembering that the best I have done
Was done to make it plain;
That every year I have cried, 'At length
My darling understands it all,
Because I hvae come into my strength
And words obey my call.'
That had she done so who can say
What would have shaken from the sieve?
I might have thrown poor words away
And been content to live.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 대해서 구경하다 이 구절이 나온 '비잔티움으로의 항해(Voyage to Byzantium)'의 저자 예이츠를 알게 되었습니다(사실 이 구절의 원문인 This is 'no country for old men'의 부정형은 "아니다"라는 유보적인 표현의 의미가 더 강합니다.)
개인적인 번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얼마 전부터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어
'나의 그녀는 알아주지 못할 걸
이 눈 먼 삭막한 세상에서
내가 해왔던, 그리고 해 나갈 것을.'
그래서 나는 태양을 쳐다보기가 싫어질 것만 같았지만
내가 해온 일을 분명히 하는 것이
지금까지의 생애에서 가장 잘 한 일임을 회상하자
내 머릿 속은 다시 맑아졌지.
이렇게 매년 울부짖었기에, '마침내
나에게 힘이 있으므로
그리고 말들이 내 명령을 따르므로
그녀는 모든 것을 이해하네.'
그러나 누가 체에서 걸러진 것을 말할 수 있을까.
그녀가 이해해 주었더라도.
나도 추잡한 말들을 던져 버리고
살아가는 것에 만족했던 걸지도 몰라.
번역하면서 어말의 운율 구조를 고심하다 1,2연과 3,4연의 짝으로 번역 운율의 순서를 일치시키는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에서 이야기하는 '말'은 망상이나 절규라고 생각합니다. 화자가 이야기하는 '힘'이 권능이라고 한다면, 드디어 화자는 그녀가 모든 것을 이해하게 만드는 권능을 가지고 있게 되었다고 해석할 수 있는데, 그럼에도 체에 걸러진 것을 말할 수 없다는 것은 이 권능은 그 자체로 불완전하다는 뜻이 되기에, 결국 그 자신에게밖에 만족스러운 권능이 될 수 없는 절규나 망상 속에서 그녀가 모든 것을 이해해주는 미래를 꿈꾸지만 현실은 여전히 자신 나름대로 추잡한 말들을 던져버리고 자신의 힘이 실존하기를 고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전문적으로 연구나 공부를 하고 쓰는 게 아니기에 이런 해석에 대한 근거는 빈약한 것일 수도 있지만 나름대로는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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