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가 잠시나마 머물렀던 자리에 온기가 사그러든다.
삭풍이 몰아치듯 아린 밤, 네가 이곳에 있었던 흔적은 이제 내팽개쳐진
스타킹 한 짝만 남아 서럽게 바스락댄다. 견딜 수 없는 고독감에 찾아온 나만의
백야를 뜬눈으로 지새우고 난 뒤에야, 억지로나마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일상으로 돌아가 너와의 접점을 끊어낼 시간이라는 것을.
장식장을 성글게 열어젖히곤, 한동안 여러 흔적들을 눈으로 좇다 보니 미련이 남는다.
마지못해 너와의 추억들을 정리하고 난 뒤 비로소 드는 것은 후회뿐이다.
젠체하며 짐짓 너의 모든 것을 안다 자신했었지만, 정작 네 진심을 왜 진지하게 듣지 않았는지.
타인이 되어버린 지금에야 자신의 허물을 발견하고 말았다.
짱짱이 들어찬 자괴감에 고개를 들어보니 어느덧 먼동이 터온다.
믿을 수 없는 이별이 파르라니 현실로 돋아나고 있었다.
고독감이 다시금 나를 뒤흔들어 지독한 자기혐오에 빠져갈 때쯤, 처연히 고갤 돌려보니 스타킹 한 짝이 여전히 그곳에
있었다. 짝과 주인을 동시에 잃은 녀석이 쭈글쭈글해진 채 널브러져 있는 모습에 문득 동질감을 느낀다. 무슨 마음이
었을까? 스타킹 한 쪽을 다시 신는 그 짧은시간 조차 함께 있기 싫었던 걸까?
다급히 문을 열고 떠나던 네 뒷모습이 떠올라 다시금 실소를 흘린다.
고민 끝에 스타킹을 집어 들어 장식장에 넣었다. 미약하게 남아있던 네 체온이 져 간다.
젠트리피케이션에 밀려나는 소상공인 마냥 시간이 갈수록 사라져가는 우리의 추억이 안타까웠지만,
장식장엔 왠지 모르게 다른 무언가가 쌓여만 갔다. 그렇게 결국, 나는 이곳에 오게 되었다.
! Ps 아쉽지만 픽션입니다. 저렇게 거창한 이유없이 그냥 좋은거 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