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드캐전 마치고 방송 말미에 삼국지 관련 이야기를 좀 했는데요,
저는 방송에서 하는 모든 이야기들은 흘러가는대로 나와서 미리 준비되지 않은 것이기 때문에 그 내용이 다소 매끄럽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어제 삼국지 관련된 이야기도 좀 그랬던 것 같아서 몇가지 덧붙여봅니다.
1. 원본이 아닌 번역본을 기준으로 2차번역을 하는 것은 '중역'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에 알려진 삼국지들이 일본의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 영향을 받은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제가 '중역'이라는 표현을 썼으면 매끄러웠을 텐데 제가 '중역'이란 단어를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2. 이문열 / 황석영 / 정비석 삼국지 중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의 영향을 받은 것은 정비석 삼국지입니다. 방송에서는 이문열 / 황석영 삼국지를 비롯한 유명한 삼국지 소설들이 대체로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말을 해버렸는데 이문열 / 황석영 삼국지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물론 요시카와 에이지 삼국지의 영향을 받은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은 건 사실입니다.
3. 제가 어린시절 많이 읽은 것은 정비석 삼국지이고 황석영 삼국지는 읽어보지 못했습니다. 이문열 삼국지는 워낙에 베스트셀러인 탓에 1회독만 해본 정도입니다.
4. 정비석에 관한 언급 중 이름만 보고는 누군지 몰랐다가 '일제시대 때 유명했던 문인의 제자'로 알게 됐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방송중엔 기억해내지 못했지만 정비석은 김동인의 제자였습니다.(친밀한 후배 정도로 보는 경우도 있습니다.) 참고로 제가 어제 기억해내고자 했던 이름은 서정주였고 잠깐 입에서 웅얼거렸던 이름은 김소월이었는데, 김소월은 완전히 무관한 이름이 잘못 나온 것이었고 서정주는 제가 정비석의 스승을 서정주로 착각했던 것이었습니다. 오늘 정확히 찾아보고서야 깨달았네요. 애초에 서정주가 정비석보다 어리기도 하고요.(굳이 둘의 연결고리라면 둘 다 친일 반민족 문인이라는 점...) 서정주-정비석 이야기는 예전에도 드캐전을 하다가 삼국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서 언급했던 적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서정주가 아니라 김동인이었다는 걸 그때라도 알았더라면......
5. 옮긴이의 주관과 주석 및 재해석이 들어가는 '평역'에 대해서 애매하게 이야기한 면이 있는데, 다른 소설들에 비해 삼국지가 유독 '평역'이 많기는 하나 모두가 평역인 것은 아닙니다. 물론 평역으로 가장 유명한 것은 이문열 삼국지입니다.(때문에 이문열 삼국지만 유독 '이문열 평역 삼국지'로 쓰는 경우도 많습니다.)
6. 중요한 것이나 제가 간과해서 언급하지 않은 부분이 있는데, 우리가 어떤 소설 삼국지 책을 고를 때 '누구의' 삼국지인가가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밑바탕이 되는 원본이 다르기 때문인 점도 있습니다. 물론 제가 이야기했던 것처럼 같은 원본을 가지고도 누가 옮기느냐에 따라 내용으로나 문체로나 차이가 생기기도 하지만 애초에 번역(정역이든 평역이든)의 원본이 다름으로써 생기는 차이는 더욱 클 것입니다. 소설 삼국지의 뿌리는 나관중의 '삼국지통속연의'지만 이후 수많은 가지가 생겨나고 그것을 번역한 것을 우리는 읽게 되는 것입니다. 때문에 삼국지를 보다 깊이있게 즐기려면 한 번역본에만 매몰되어있는 것(저처럼)은 좋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