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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잡지
2019-02-08 20:21:33 294 0 0

서쪽에서 바람이 불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나지막해서 잘 알아들을 수 없다.


"....가세요."


남자의 얼굴은 크게 일그러지고 아랫입술은 얼마나 깨물었는지 성한 자국이 하나 없었다. 게다가 귀와 머리에서는 오래 전에 흐른 피딱지가 여물지도 않은듯 끈적끈적하게 붙어있었다.


그녀는 조금도 흔들리지 않는 눈빛으로 시종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단호한 의지를 밝혔다.


남자는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있다면, 수없이 마음 속으로 빌고 또 빌었지만 결국 시간은 언제나 미래를 향한 타임머신일 뿐이다. 지금의 상황은 미래에게 가서는 아무렇지 않은 그저 과거일 뿐이다. 그렇기에 남자는 더욱 가슴이 아프다.


시간이 지체되자 그녀의 목에 겨눠진 칼이 조금 더 깊이 뽀얗고 하얀 그의 살결을 파고 들었다. 은빛이 반짝이는 쇠의 빛이 하얀 목에서 나온 붉은 피를 타고 흘렀다. 그 피는 점점 흘러 그녀의 하얀 저고리와 하얀 치마와 하얀 신을 지나 결국은 하얀 땅으로 떨어졌다.


땅에 떨어지는 한방울 한방울 마다 심장에 떨어지는 커다란 불의 비와 같다. 뜨겁고 붉은 피가 심장에 한방울 내려 앉을 때, 심장은 자신의 피가 아닌 피에 겁을 먹고 가끔은 멈추거나 놀랍고 당황스러워서 도망가느라 급히 내달릴 뿐이다.


그녀의 눈동자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다. 그럴수록 그녀의 목은 붉어져가고 그녀의 저고리도 붉고 그녀의 치마도 붉고 그녀의 신도 붉고 땅도 붉어진다.


바람이 불었다. 한방울 비가 떨어졌다. 또 한방울 비가 떨어졌다. 한방울 비가 떨어질 때마다 붉은 땅은 먼지가 일어 바람에 휘날려 날아간다.


그녀의 하얀 얼굴은 너무나도 하얗게 되어서 바람이 불면 번져나가고 빗방울 하나 맞으니 뿌옇게 번져간다.


사랑한 그녀의 몸이 사라져가고 남은건 저고리와 치마와 신만 남아 털썩 먼지를 일으킨다. 먼지는 바람을 타고 하늘높이 날아 볼 수 없는 어느 먼 곳으로 떠날려 하지만, 남자의 손길은 먼지를 움켜 잡고 싶다.


움켜 잡고 움켜 잡아 비가 내려 하늘 높이 쏟아오른 먼지들이 후두둑 모두 떨어져버렸다.


붉은 저고리 붉은 치마 붉은 신도 없다, 하얀 저고리 하얀 치마 하얀 신도 없다.


남은건 비에 흠뻑 젖은 검은 저고리 검은 치마 검은 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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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연계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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