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

소방공익입니다.

handuri
2018-12-15 21:43:22 17019 458 25

술마시고 주저리주저리해봅니다.

심약자에게는 조금 충격적일 수도 있으니 뒤로 돌아가셔도 좋습니다.


먼저 저는 응급구조과 학생입니다. 중학생 때부터 구급차 타는게 꿈이었고 지금도 그 꿈은 변치않습니다.

원래 의무소방을 가고 싶었는데, 선천적으로 살이 안찌는 체질이고 당시 체력이 워낙 쓰레기여서 신청조차 하지 못한채 저체중으로 사회복무를 하게 됐습니다.

그래도 이왕 하는거 경험이라도 쌓고 싶어서 소방서에 지원을 했고 제 바람대로 집 근처에 있는 소방안전센터에서 근무하게 됐습니다.

처음 망자(돌아가신 분을 저희는 이렇게 부릅니다)를 마주했던 기억이 납니다.

17년 11월 어느 날 야간근무를 서고 있을 때, 아파트 13층에서 사람이 떨어졌다는 신고가 경비원에게 들어왔고 새벽에 비몽사몽한 채로 출동을 나갔습니다.

출동 나가기 전에 구급대원이 물어보더랍니다.

보기 싫으면 센터에 있으라고

저는 전공이 그쪽이고, 망자를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순수한 학구열로 따라나섰습니다.

선임에게 배운대로 AED와 들것을 챙기고 나갔습니다.

그 망자를 처음 마주했을 때, 사인은 너무나도 확연했습니다.

베란다를 열고 뛰어내려 소나무를 부러트리고 카니발 천장에 부딪혀 튕겨나가 곧바로 아스팔트 바닥에 누워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머리 반쪽이 뭉개져있었고 제가 도착했을 때도 여전히 피가 선홍색을 띄며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 때 처음으로 그렇게 많은 피를 처음 봤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그토록 순수한 학구열이 없었더라면 그 때 많은 충격을 받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의미없는 심전도를 검사하고 그 망자는 사망이 확실하다고 영상통화를 통해 의사에게 확인받았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건 그의 눈동자를 바라보며 세상에 대한 미련을 끊어버린 그 나름의 용기를 격려하는 동시에

좀 더 살아보지 왜 서른 남짓한 나이에 목숨을 끊을 각오를 했냐는 안타까움과

그가 부디 좋은 곳으로 걸어갔기를 바라는 명복 뿐이었습니다.

종종 바라건대 그의 가족들이 슬픔에 너무 잠기지 않기를 빌고 있습니다.


또 얼마전엔 방에서 인기척이 없다는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96년생으로 저와 동갑이었고 방에서 번개탄을 태워 자살한 여성이었습니다.

우울증이 심해 자살시도로 종종 신고가 들어와 이송했던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수없이 자살시도를 실패했는데, 그녀는 결국 세상을 등지는데 성공해버렸습니다.

방문을 개방하고 들어갔을 때 방안엔 매캐한 연기 냄새가 가득했었고 그녀는 가슴에 양손을 모은채 이미 사지에 경직이 와버린 상태였습니다.

그녀의 턱과 손가락 어느하나 거르지 않고 뻣뻣하게 굳어있었으며, 그건 이미 돌아오기에 너무 늦어버렸단 걸 의미했습니다.

그녀는 아마 제가 출근하던 아침 때 진즉 심정지가 왔을겁니다.

그 때 많이 슬펐습니다.

아직 하고 싶은게 많을텐데, 할 수 있는게 많은데, 내가 추위에 투덜대며 출근할 때 그녀는 이미 세상을 버렸구나.

나랑 나이도 같은데, 얼마나 세상에 질려버렸으면 그리 빨리 이승을 떠나버렸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망자를 대할 때 최대한 감정을 지우려고 합니다.

그런데도 그 망자를 바라볼 땐 많이 슬펐습니다.

그러면서도 부디 좋은 곳으로 떠났기를 바랐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저는 어느새 소집해제를 6개월남긴 사회복무요원이 됐습니다.

구급출동을 나가며 수많은 술취한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쌍욕을 듣고 폭력에 대한 위협을 느꼈으며, 여전히 어리고 혹은 늙은 망자를 만나고 있습니다.

수없이 CPR을 하고 정말 열심히 현장활동에 임했건만, 전 그분들의 가느다란 생명줄을 붙잡지 못했습니다.

대부분 망자들이 노인인 것을 고려했을 때 그들의 소생확률이 한없이 낮다는 것은 사실이나 역시 스스로에 대한 비난과 살리지 못했다는 자책감은 어쩔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건, 그렇게 죄책감에 빠질 때마다 제가 아직 감정이 메마르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사실 정말 두려운 것은 망자들에 대한 명복조차 빌어줄 감정이 들지 않을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여전히 훌륭한 구급대원이 되고 싶습니다.

몸이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고 마음이 아픈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습니다.

훗날 제가 구급대원이 되고 퇴직을 할 때까지, 제가 그저 월급만 축내는 감정없는 기계로 남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술취하고 두서없이 주절거렸습니다.

요즘도 술에 취하면 제가 만났던 환자들이 생각나서, 여기에라도 풀어놓으면 마음이 편해지지 않을까 싶어서 장문의 글을 적어봅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들 건강하고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후원댓글 25
댓글 25개  
이전 댓글 더 보기
이 글에 댓글을 달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해 보세요.
0
12-15
0
살충제좀 주세요 [2]
훈민정음닉네임
12-15
3
12-15
1
호다닥 [2]
사연진품명품
12-15
0
12-15
0
노래추천 [2]
J710k
12-15
0
포인트냠냠 [1]
위즈빈_
12-15
0
ㄴㄷㅆ 인데 [4]
박설명
12-15
1
트게더 오늘은 [1]
사이온
12-15
2
12-15
»
12-15
3
가꼬단 [14]
공구원
12-15
4
오늘 하루 [4]
째이크
12-15
인기글 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