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yudejakeiru를 철자 그대로 대응해서 읽으면 ‘류데자케이루’ 정도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김한주가 노래하는 것을 들으면, ‘류데자케에루’에 가깝게 들린다.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e/와 /i/는 굉장히 가까운 발음이다. /e/를 발음하면서 입을 평평하게 다물면, /i/ 소리가 난다. 현대 한국어는 /ε/와 /e/의 구분(ㅐ와 ㅔ)이 더이상 도드라지게 나타나지 않으므로, 대충 /ε/와 /e/의 중간 발음 정도로 소리를 내므로 명백하게 ㅣ와 ㅔ가 구분되지만, 이를 구분하는 프랑스어에서 음소 /e/는 간혹 /i/처럼 들리기도 한다. 왜냐하면 /a/에서 /ε/, /e/, /i/로 가는 과정은 입을 점차 다물어 가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즉 ‘아’를 발음하면서 입술을 평평하게 오므릴 수록 애, 에, 이 순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어에서는 마지막 /e/ 다음에 /i/가 첨가되는 경우가 잦다. 그래서 사운드 오브 뮤직 OST ‘DO-RE-MI’에서 다음과 같은 언어 유희가 가능한 것이다. “Re, a drop of golden sun”에서 re와 ray의 발음이 비슷하게 나타난다. 반면, 한국어에서는 ㅔ 다음의 ㅣ를 건너뛰는 경우가 있다. 이는 ‘최소 노력 현상’ 때문인데, 발음하고자 하는 노력을 비슷한 음가로 대체하면서 최소한만 하는 것이다.
그 예로, 근로자의 날은 북한에서 메데(may day)라고 하는 것을 들 수 있다. 또 게임 ‘메이플스토리’를 메-플이라고 발음한다거나….
한 가지 더 고려할 점은, 노래 선율의 높낮이다. 류데자케이루에서 케 보다 이의 음이 더 높다. 음이 높아지면서 입을 다무는 것보다 벌리는 것이 그 음을 내기에 구조적으로 더 용이하다.
이 두 가지 요인으로, 이를 보다 에에 가깝게 발음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마지막으로 Ryudejakeiru는 ryu/de/jake/iru의 형태소로 구분된다는 추측이 있다. 인간 사고 과정에서 서로 다른 형태소는 구분하고자 하는 현상이 거의 늘 포착된다. 그런데 김한주가 마치 한 단어인 것처럼 발음한 것은, 류데자케이루의 의미를 생각하기 보다는 그냥 ‘야라히바라히요’처럼 일종의 운율감을 위하여 창조된 단어로 보고자 하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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